나만 업무가 느린 것 같을 때

말할 때는 아무 일도 없다가 두 달 뒤에 문제가 생깁니다. 회사에서 개인 이야기를 꺼내기 전 확인할 3가지, 말할 때 함께 붙여야 할 말, 그리고 법적으로 답하지 않아도 되는 질문까지 정리했습니다.

업무가 느린 것 같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속도를 올리는 게 아닙니다. 정말 느린 게 맞는지부터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 둘을 구분하지 않으면, 느리지도 않은데 자책만 늘거나 진짜 원인을 놓친 채 야근만 늘어납니다.

업무가 느린 것 같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속도를 올리는 게 아닙니다. 정말 느린 게 맞는지부터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 둘을 구분하지 않으면, 느리지도 않은데 자책만 늘거나 진짜 원인을 놓친 채 야근만 늘어납니다.

6시가 지나고 혼자 남았을 때

여섯 시 십 분. 옆자리 동료가 코트를 챙겨 나갑니다. 메신저의 초록 불이 하나씩 꺼집니다. 나는 아직 오후 두 시에 열었던 그 문서 앞에 앉아 있고, 진행률은 절반쯤입니다.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사무실이 조용해질수록 마음이 급해집니다.

다른 장면도 있습니다. 주간 회의에서 누군가 말합니다. “그거 어제 다 정리했어요.” 내가 사흘째 붙잡고 있는 것과 비슷한 종류의 일입니다.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았는데 얼굴이 뜨거워집니다. 그날 저녁에는 유난히 오래 앉아 있게 됩니다.

이 감각은 흔합니다. 그리고 흔한 만큼, 상당 부분이 착시입니다. 다만 전부 착시는 아닙니다. 그래서 순서를 나눠야 합니다.

먼저, 느낌을 만드는 세 가지 착시

① 나는 과정을 보고, 남은 결과만 본다

동료가 “어제 다 했어요”라고 말할 때, 그 문장 뒤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보이지 않습니다. 두 번 갈아엎은 초안, 자료를 잘못 찾아 날린 40분, 회신을 기다리며 멍하니 있던 시간. 그건 그 사람 자리에서만 보이는 장면입니다.

이건 성격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일반적인 인지 습관입니다. 스탠퍼드 연구진이 2011년 발표한 연구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부정적 감정은 긍정적 감정보다 더 감춰진 것이라고 여겼고, 또래가 그런 부정적 경험을 얼마나 자주 겪는지는 실제보다 낮게 추정했습니다. 심지어 잘 아는 사이의 동료에 대해서도 그랬습니다(Jordan et al., “Misery Has More Company Than People Think”, PSPB, 2011).

같은 하루, 다르게 보이는 이유 내가 아는 나의 하루 완성한 결과물 회신을 기다린 두 시간 막혀서 멍하니 있던 20분 지웠다 다시 쓴 초안 두 개 자료를 잘못 찾아 날린 40분 내가 보는 동료의 하루 완성한 결과물 여기는 보이지 않습니다 “어제 다 했어요” 한 문장으로 덮인 부분 같은 분량의 일을 해도, 나는 과정 전체를 보고 상대는 결과만 봅니다.
나의 과정과 동료의 결과물이 비교되는 구조

② 애초에 불가능한 예상치를 세운다

이게 가장 자주 놓치는 부분입니다. “나만 느린 것 같다”는 감각은 사실 동료와 비교해서 나오는 게 아닐 때가 많습니다. 아침에 내가 혼자 세운 비현실적인 예상치와 비교해서 나옵니다.

1994년 계획 오류 연구가 이걸 정확히 보여줍니다. 심리학과 학생들에게 졸업논문 완성 시점을 예측하게 했더니 평균 33.9일을 답했지만, 실제로는 55.5일이 걸렸습니다. 흥미로운 건 “모든 게 최악으로 흘러갈 경우”를 가정해 잡은 48.6일도 실제보다 짧았다는 점입니다. 본인이 예측한 기간 안에 끝낸 사람은 약 30%뿐이었습니다(Buehler, Griffin & Ross, “Exploring the Planning Fallacy”, JPSP, 1994).

더 중요한 대목이 있습니다. 이 낙관 편향은 자기 과제를 예측할 때만 나타납니다. 같은 사람이 남의 과제 소요 시간을 예측할 때는 오히려 넉넉하게 잡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자기한테는 가혹한 마감을 주고, 남에게는 관대한 마감을 주고 있는 셈입니다. 그 상태로 자기와 남을 나란히 놓으면 결과는 정해져 있습니다.

③ 잘하는 사람일수록 자기를 의심한다

스스로의 능력을 실제보다 낮게 보고 언젠가 들통날 것 같다고 느끼는 상태를 학계에서는 ‘가면 현상’이라고 부릅니다. 2020년 Journal of General Internal Medicine에 실린 체계적 문헌고찰은 62편, 참가자 14,161명을 검토했는데 유병률이 측정 도구에 따라 9%에서 82%까지 넓게 나타났습니다. 성별을 가리지 않았고, 청소년부터 경력이 오래된 전문직까지 연령대도 가리지 않았습니다(Bravata et al., JGIM, 2020).

같은 논문이 짚는 용어 문제도 알아둘 만합니다. 학술 문헌은 ‘증후군’이 아니라 ‘현상’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병처럼 이름 붙이면 드물고 특이한 일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는 드물지 않습니다. 지금 정시에 퇴근한 그 동료도 어제는 같은 생각을 했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실제로 느릴 수 있다

여기서 “그러니까 다 착각이에요, 괜찮아요”로 끝내면 도움이 안 됩니다. 정말로 시간이 더 걸리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그 원인이 능력인 경우는 생각보다 드뭅니다.

갈라놓고 봐야 할 두 가지 느낌이 만든 부분 내 과정 전체 vs 남의 결과물 아침에 혼자 세운 비현실적 예상 나에게만 엄격한 마감 기준 “나만 이런다”는 과소추정 여기는 더 열심히 해도 해결되지 않는 영역입니다 실제로 손댈 수 있는 부분 일이 잘게 조각나 있다 시작 지점이 다르다 (자료·권한) 완성도 기준을 혼자 높게 잡았다 지시를 덜 받은 채 출발했다 애초에 같은 종류의 일이 아니다 여기는 하나씩 확인하면 대부분 바뀝니다 두 칸을 섞어두면 자책만 늘고, 실제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손도 못 댑니다.
착시 요인과 실제 요인을 나눠본 표

일이 조각나 있으면 총량이 같아도 오래 걸린다

세 시간 붙잡고 있었다고 해서 세 시간을 쓴 게 아닙니다. 중간에 여덟 번 끊겼다면, 그건 20분짜리 조각 아홉 개입니다.

여기서 흔히 인용되는 “중단 후 복귀까지 23분 15초”라는 수치는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 숫자는 논문에 실린 결과가 아니라 연구자 글로리아 마크가 갤럽 인터뷰에서 언급한 관찰값입니다. 인터넷에서 논문 인용처럼 도는 경우가 많은데 정확하지 않습니다(해당 수치의 출처를 추적한 검증 글).

다만 같은 인터뷰에서 더 유용한 설명이 나옵니다. 중단된 일의 81.9%는 같은 날 다시 손을 대지만, 원래 하던 일로 곧장 돌아가지 않고 평균 두 개의 다른 일을 거친 뒤에야 복귀한다는 겁니다(Gallup, Too Many Interruptions at Work? — Gloria Mark 인터뷰). 느린 게 아니라 자꾸 다른 데를 다녀오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시작 지점이 같지 않다

같은 자료를 만들어도, 작년 파일을 갖고 있는 사람과 처음부터 찾는 사람의 소요 시간은 두 배 이상 차이 납니다. 시스템 권한이 있는지, 이전 담당자에게 물어볼 수 있는 사이인지도 그대로 시간이 됩니다. 이건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출발선의 문제입니다.

완성도 기준을 혼자 높게 잡았다

요청한 사람은 초안 수준을 기대했는데 혼자 최종본을 만들고 있는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이때 걸린 시간은 능력 부족이 아니라 기준 불일치입니다. 확인 방법은 간단합니다. “어느 정도 완성도로 드리면 될까요? 러프한 초안이면 될까요, 바로 보고 가능한 수준이 필요할까요?”

같은 이름이라고 같은 일이 아니다

회의에서 나온 “그 보고서”와 내가 붙잡고 있는 “그 보고서”가 같은 난이도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데이터를 새로 뽑아야 하는 건인지, 지난 분기 양식을 숫자만 바꾸면 되는 건인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일입니다. 비교하기 전에 같은 일인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사흘만 기록해보기

추측으로는 답이 안 나옵니다. 그렇다고 거창한 시간관리를 시작할 필요도 없습니다. 사흘 동안 네 칸만 적어보면 대부분 답이 보입니다.

사흘치 네 칸 기록표 한 일 착수 ~ 종료 중단 횟수 막혔던 지점 분기 매출 요약표 14:10 ~ 18:20 7회 자료 권한 요청 대기 거래처 회신 메일 09:30 ~ 10:05 1회 없음 (직접 채워보세요) 느린 게 아니라 ‘멈춰 있던 시간’이 길었던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업무 소요 시간과 중단 횟수를 함께 적는 기록표

사흘이면 충분합니다. 대개 두 가지 중 하나가 나옵니다. 중단 횟수가 압도적으로 많거나, 막힌 지점이 늘 같은 자리거나. 전자는 일하는 환경을 손봐야 하고, 후자는 그 한 가지를 배우거나 물어보면 끝나는 문제입니다. 어느 쪽도 “나는 느린 사람”이라는 결론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손댈 순서

  1. 완성도 기준부터 맞춥니다. 이것 하나로 시간이 절반이 되는 경우가 흔합니다. 시작할 때 한 번만 물으면 됩니다.
  2. 80% 초안을 먼저 보여줍니다. 완성해서 확인받으면 되돌릴 수 없지만, 절반쯤에서 보여주면 방향이 틀렸을 때 손해가 작습니다.
  3. 막히면 15분 룰을 씁니다. 15분 넘게 같은 자리에서 못 움직이면 혼자 해결하지 말고 물어봅니다. 15분은 배우는 시간이고, 두 시간은 그냥 사라지는 시간입니다.
  4. 하루에 한 덩어리는 지킵니다. 90분이든 60분이든, 알림을 끄고 한 가지만 하는 구간을 하나만 확보해도 체감이 달라집니다.
  5. 반복되는 일은 양식으로 만듭니다. 세 번 이상 한 일이라면 매번 처음부터 하고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비교를 끊는 게 아니라, 대상을 바꾸는 것

“남과 비교하지 마세요”는 지키기 어려운 조언입니다. 사람은 원래 비교합니다. 현실적인 방법은 비교 대상과 지표를 바꾸는 쪽입니다.

  • 대상: 옆자리 동료가 아니라 석 달 전의 나. 같은 종류의 일을 그때는 며칠 만에 했는지 떠올려보면 대체로 놀랍니다.
  • 지표: 걸린 시간이 아니라 재작업 횟수. 한 번에 통과되는 결과물을 내는 사람은 결국 팀 전체의 시간을 아낍니다. 그건 속도로는 안 잡히는 값입니다.
  • 단위: 하루가 아니라 한 주. 하루 단위로 보면 누구나 느린 날이 있습니다.

덧붙이자면, 신입이거나 부서를 옮긴 지 얼마 안 됐다면 지금 느린 게 정상입니다. 그 시기에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일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고, 두 가지는 원래 속도가 다릅니다.

그래도 마음이 계속 무겁다면

기록해봤더니 특별한 문제가 없는데도 “나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몇 주째 이어지고, 퇴근 후에도 그 생각이 계속되고, 잠이나 식사에까지 영향을 준다면 그건 업무 속도의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앞서 본 문헌고찰도 가면 현상이 우울·불안과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보고합니다.

이럴 때는 혼자 더 열심히 해서 증명하려는 방향보다, 믿을 만한 사람에게 이야기하거나 전문가와 상담해보는 쪽이 훨씬 빠릅니다. 회사에 EAP(근로자지원 프로그램)가 있다면 그것도 쓸 수 있는 자원입니다.

한 줄로 남는 것

“나만 느린 것 같다”는 문장에는 검증되지 않은 가정이 세 개나 들어 있습니다. 나만 그렇다는 가정, 느리다는 가정, 그게 능력 때문이라는 가정입니다. 셋 다 확인해본 적 없이 결론만 내려져 있습니다.

오늘 저녁, 자책을 시작하기 전에 종이 한 장을 꺼내 네 칸만 적어보시길 권합니다. 몇 시에 시작해서 몇 시에 끝났고, 몇 번 끊겼고, 어디서 막혔는가. 대부분의 사람은 그 종이에서 자기가 느린 사람이 아니라는 걸 발견합니다. 그리고 진짜 손대야 할 자리도 같이 발견합니다.

참고자료

  • Roger Buehler, Dale Griffin & Michael Ross, “Exploring the ‘Planning Fallacy’: Why People Underestimate Their Task Completion Time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67(3), 1994 — 논문 PDF
  • Alexander H. Jordan et al., “Misery Has More Company Than People Think: Underestimating the Prevalence of Others’ Negative Emotions”,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37(1), 2011 — PubMed
  • Dena M. Bravata et al., “Prevalence, Predictors, and Treatment of Impostor Syndrome: a Systematic Review”, Journal of General Internal Medicine, 35, 2020 — Springer
  • Gallup, “Too Many Interruptions at Work?” (Gloria Mark 인터뷰) — news.gallup.com
  • “23분 15초” 수치의 출처를 추적한 검증 글 — blog.oberie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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